서울의대·서울대병원·한림대와 공동연구로 이온분극현상 활용한 투석법 제시
나노전기수력학 기반 기술로 복막투석액 연속재생하는 인공신장 구현
신장 투석 환자 삶의 질 향상·의료 접근성 확대·의료비 절감 기대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전기정보공학부 김성재 교수팀이 서울대학교병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한림대학교 융합신소재공학전공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휴대용 인공신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형 복막투석기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지난 3월 29일 바이오 기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 ‘저널 오브 나노바이오테크놀로지(Journal of Nanobiotechnology)’에 게재됐다.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 투석을 받는 환자는 산업 발전과 식습관 변화로 인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재 신장 기능을 대신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혈액 투석법은 환자의 일상생활을 크게 제약하는 한계가 있다. 장치가 클 뿐 아니라, 환자가 병원에서 주 2~3회, 4~6시간씩 투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유럽, 일본의 연구진은 개인이 휴대하고 다니면서 투석할 수 있는 실용적 장치의 개발을 주도해 왔지만, 소형 투석기 제작 기술의 부재로 실용화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혈액 투석법의 새로운 대안인 복막투석법은 복막 내에 주입된 투석액이 물질 교환을 통해 노폐물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환자가 자택을 비롯해 어디서든 스스로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강점을 지닌다.
우선 공동 연구팀은 이 복막투석 과정 중 물질 교환이 완료된 투석액을 체외에서 연속적으로 정수한 후 복막 내에 재주입하는 방식을 통해 장치를 소형화하면, 환자가 직접 착용할 수 있는 복막투석기로 활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쿨롱 힘(Coulomb force, 전기적 인력과 척력)에 기반해 이온 및 입자를 빠른 속도로 이동시키는 ‘이온농도분극(Ion Concentration Polarization)’ 현상을 활용해 체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새로운 정화 메커니즘을 제시한 것이다.
이온농도분극은 나노막의 선택적 이온 투과성에 의해 나노막 근처에서 농도의 급격한 하강과 상승이 일어나는 나노전기수력학적 현상이다. 이때 농도가 급격히 하강된 나노막 부근의 용액을 모으면 정수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나노막 양단에 전기장을 가하면 쿨롱 힘으로 이온의 선택적 분리를 가속화시켜 정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체내 주요 노폐물인 유레아(Urea)는 전기적으로 중성을 띠어 쿨롱 힘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전기 투석법으로는 투석액을 완전히 정화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연구팀은 다음 단계로 나노막의 선택적 이온 투과성을 더욱 활성화해 크레아티닌(Creatinine)처럼 전하를 띤 체내 노폐물뿐만 아니라, 유레아도 전기화학적으로 대부분 분해해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투석액 정화 원리를 제시했고, 미세유체역학 장치(Microfluidic Device, 미세 채널이 유체 흐름을 조절해 화학 반응을 유도하는 장치)를 활용해 이를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연구팀의 최종 과제는 투석액의 유량 확장이었다. 구현한 장치를 인체에 착용 가능한 투석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분당 밀리리터(㎖) 수준의 수처리 용량을 달성해야 하는데, 기존의 미세유체역학 장치는 평면적인 2차원 구조로 인해 용량이 분당 마이크로리터(㎕) 수준에 그쳐 충분한 유량 확장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선 연구팀은 나노 다공성막 부근에만 미세유체역학 환경을 조성해 더 높은 유량을 확보할 수 있는 마이크로-메쉬 구조(Micro-Mesh Structure)를 설계했고, 그 결과 3차원 구조의 투석기 개발에 성공했다. 투석기의 수처리 용량이 최대 분당 1밀리미터를 기록함에 따라 연구팀은 유량 확장성을 입증했고, 이를 신부전 쥐 모델에 적용한 결과 1사이클당 평균 약 30%의 체내 노폐물 제거율을 증명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복막투석기가 실제로 휴대 가능한 기기로 상용화되면 향후 신부전증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사회적 의료 비용 절감과 의료 폐기물 감소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저소득층 및 개발도상국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서울대 의대 이정찬 교수는 “개발한 복막 투석기가 인체에 적용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제품화를 비롯해 안전성 평가, 임상시험, 규제기관 인허가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도 “이번 연구는 말기신부전 치료법을 혁신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앞으로 환자들이 실제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더 많은 투자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림대 성건용 교수는 “이번 성과는 나노 기술이 실질적으로 인공 장기에 적용된 첫 사례”라고 강조하며 “투석으로 삶의 만족도가 낮아진 말기신부전 환자들에게 향후 더욱 개선된 삶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연구자로서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병원 김연수 교수는 “그간 다양한 만성 콩팥병 치료법이 사용됐지만 환자가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연구 결과가 상용화되면 만성 콩팥병 환자가 일상 생활을 안정적으로 영위하는 건 물론이고, 활동적인 삶도 충분히 계획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김성재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순히 최신 소형 투석기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 향상, 의료 접근성 확대, 의료비 절감, 의료기기 산업 발전 등 사회 전반에 걸친 폭넓은 기대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쥐 모델에 적용한 결과 명확한 한계도 있었지만, 이온농도분극 현상을 활용해 노폐물을 제거하고 유량을 확장하는 기술 혁신을 선보인 투석기를 인공 신장에 통합하면 말기 신부전 환자가 이동성을 확보해 생활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새로 개발된 복막투석기의 잠재력을 설명했다.
한편 본 논문의 제1저자인 김원석 박사는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에너지환경융합 연구실에서 연구교수로서 근무하고 있다. 착용 가능한 인공신장 및 패혈증 현장진단 칩 등 전기-바이오 융합 분야의 연구를 수행 중이다. 공동 제1저자인 이선화 교수는 현재 강원대학교병원 신장내과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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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