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추모공원서 화장…서울현충원에 임시 안치 후 현충관서 국민추모공간 운영
국가보훈부는 8일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의 배우자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유해를 키르기스스탄에서 사후 70여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봉환했다고 밝혔다.
국내로 봉환된 최 여사의 유해는 이날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해 서울현충원 봉안식장에 임시 안치된다.
최재형 선생의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된 흙도 오는 11일 국내로 반입된다. 이후 12~13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의 국민추모공간에 최재형 선생의 위패와 함께 안장된다.
12일부터는 러시아 등 해외 각국에 거주하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파벨, 증손자 최 표토르, 외증손녀 박 따띠아나 등 직계 후손들이 귀국해 유족으로 함께한다.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에는 ‘백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을 주제로 부부 합장식이 거행된다. 원래 최재형 선생의 묘가 있다가 멸실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안장된다.
최 여사(1880-1952)는 1897년경 최재형 선생과 결혼해 슬하에 3남 5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형 선생이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를 조직해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는 동안, 최 여사는 대가족을 돌보며 남편인 최재형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로 순국하자 그의 남은 가족들도 보살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 중 3남 최 발렌틴과 5녀 최 올가의 회고에 따르면, 최재형 선생 부부는 고성 한번 오가는 일 없이 서로 깊이 존경하고 배려하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좋은 본보기가 됐고 전해진다.
하지만 최재형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하자 최 여사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고, 1922년 러시아가 공산화되면서 자본가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유배된 이후 1952년 사망해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보훈부는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함께 키르기스스탄 현지에서 지난달 31일부터 시작한 유해 수습 등 준비 절차를 모두 마치고 지난 7일 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최 여사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셔왔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제라도 여사님을 해방된 조국으로 모셔와 서울현충원에 최재형 선생의 부부합장묘를 조성하게 돼 너무나 뜻깊다”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쳤으나 유해마저 찾을 수 없었던 순국선열을 단 한분도 소홀함 없이 예우하는 일류보훈 실현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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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철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