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경주시와 함께 6월 30일 오후 2시발굴조사 현장에서 경주 황룡사지 남쪽에 위치한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味呑寺址 三層石塔)’ 주변 발굴조사 성과를 일반에 공개하는 설명회를 개최한다.
※ 발굴조사기관 : (재)불교문화재연구소
※ 발굴조사 현장 : 경북 경주시 구황동 441 발굴조사 현장
미탄사는 그간 역사 기록에는 남아 있지만 실존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2014년 문화재청 중요 폐사지 시·발굴조사 사업에서 ‘미탄(味呑)’명 기와가 출토되면서 삼층석탑과 함께 사찰의 위치를 확인하였고,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하나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번에 미탄사의 사역(사찰이 차지하는 구역)과 배치가 확인되었다.
* <삼국유사> 권1, 기이 1편, 신라시조 혁거세왕: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에 있는 미탄사의 남쪽에 옛 터가 있다. 이것이 최후(崔候)의 옛집이 분명하다.’
* 중요 폐사지 시·발굴조사 사업: 2010년부터 실시한 전국 폐사지 학술조사에서 확인된 폐사지 중에서 정비가 필요한 중요 폐사지를 선정하여 2013년부터 시·발굴조사 사업을 실시하였는데 미탄사지가 첫 번째 유적으로 선정되었다.
조사 결과 ‘미탄사’는 8세기 후반 기존 황룡사지 남쪽 신라방 내 가옥에서 사찰로 전환되어 13세기까지 운영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역은 신라왕경 방리제 안에서 방내도로로 구획된 곳에 세로 약 160m, 가로 약 75m, 면적 12,000㎡로, 삼층석탑과 금당지를 비롯한 여러 동의 부속 건물과 원지(園池, 정원 안에 있는 연못), 담장, 우물, 배수로 등이 갖춰져 있었다.
사찰 영역은 삼층석탑과 금당으로 구성된 예불 공간, 승려들이 거주하는 승방과 부속 건물 등으로 구성된 생활공간, 그리고 원지 일원의 후원공간으로 나눠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 방리제(坊里制): 고대 국가에서 왕경이나 지방의 거점지역을 통치의 목적 아래 일정한 영역으로 나눈 도시구획 형태의 하나, 동서와 남북의 도로를 구획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설계
특히 미탄사는 추정 문지-탑-금당이 남북으로 배치되었는데 금당이 탑의 중심축선상에 벗어나 있어 전형적인 신라왕경 내 사찰과는 다른 형태의 가람배치를 보인다. 이는 8세기 이후 신라왕경의 도시가람으로 지어진 귀족층의 원찰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통일신라시대 왕경 사찰 연구에 있어 학술적 의미가 크다.
* 가람(伽藍) : 승려들이 불도를 닦으면서 머무는 절
* 원찰(願刹) :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사찰로 원당(願堂)이라고도 함
이번에 처음으로 확인된 원지(약 33×28m, 약 900㎡)는 금당지 북서쪽에 위치하며, 동쪽 남북대로(大路)의 배수로에서 원지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입수구를 갖추었다. 원지는 직선과 곡선호안으로 이뤄져 있는데, 호안의 동벽과 북벽은 강돌을 여러 단 쌓아 직선호안으로 만들었고 서벽과 남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곡선호안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형태의 미탄사 원지는 동궁과 월지, 구황동 원지, 용강동 원지와 함께 신라왕경 내 원지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 호안(護岸): 강이나 바다의 기슭이나 둑 따위가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나 장치
또한, 기존 나말여초(신라 말기~고려 초기) 석탑으로 여겨지던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의 하부 지정층을 조사한 결과 석탑이 8세기 후반에 건립되었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현장설명회는 별도 신청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더 자세한 사항은 (재)불교문화재연구소(☎02-735-9948)로 문의하면 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적극행정과 정부혁신 하나로 신라 문화유산이 좀 더 친숙하게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발굴현장을 적극적으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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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수 기자 다른기사보기